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주만 공습 (문단 편집) === 소련 === 흥미로운 점으로는 진주만 공습의 정확한 일자가 소련으로 새어나갔다는 사실이 있다. 소련의 전설적 스파이 [[리하르트 조르게]]가 진주만 공습의 정확한 일자를 알아내 소련에 보냈기 때문. 조르게는 독일 침공도 미리 알고 보고했었던 성과가 있으니 보고 자체는 믿었겠지만 [[이오시프 스탈린]]이 진주만 공습과 미국 참전의 시작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불명이다. 당시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었고 소련은 독일군이 [[모스크바]] 바로 앞까지 진격하는 등, 제 코가 석자라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. 혹은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해서 자신들의 랜드리스 보급선을 막는 것을 우려했을지도 모른다. 그러나 조르게가 빼낸 일본군 남방작전은 소련에 큰 도움이 됐다. 조르게는 "모스크바가 함락되지 않는 한은 일본은 중립을 지킬 것"이라고 타전했다. 소련은 그 정보를 접하고 [[시베리아]]에서 일본군과 대치하고 있던 정예사단 중 일부[* '전부'는 아니다. 소련은 만에 하나 일본군이 공격해서 양면전쟁이 벌어지면 골치아프다는 것을 잘 알았고, 이 때문에 모스크바 공방전 때는 물론이고 독소전쟁 내내 수십 개 사단의 병력을 극동 전선에 상시 배치했다.]를 열차로 실어 와서 [[모스크바 공방전]]에 투입하였고 이들은 독일군을 저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. 또한 일본은 독일이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소련을 후방에서 공격하겠다고 독일에게 알렸었는데 일본의 행동으로 결국 독일의 모스크바 공략이 더 어렵게 됐으니 독일 입장에서는 일본의 팀웍은커녕 [[팀킬]]도 이런 팀킬이 없었을 것이다. 물론, 동맹이랍시고 [[할힌골 전투]] 직후의 [[독소 불가침조약|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]]과, [[바르바로사 작전]] 직전의 소련과 일본의 불가침 조약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팀워크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